평소 산행을 좋아합니다. 산행을 본격적으로 즐기기 시작한 것은 군대를 제대한 직후부터입니다. 군대에서 2년 5개월동안 다듬어놓은 몸매도 유지하고 건강을 위해 당시 거주하던 곳에서 가까운 북한산국립공원 '삼각산'을 매주마다 오르기 시작했습니다.
삼각산은 우이동이나 구파발, 정릉, 구기동 등에서 시작하는 주 등산로를 이용하지 않고, 집에서부터 걸어 가장 가까운 능선을 주로 이용했습니다. 주택가 인근 능선을 따라 산에 올라 삼각산 주능선으로 오르곤 했지요. 자주 이용하던 곳이 칼바위능선길과 수유리 진달래 능선, 우이동 계곡 코스 등입니다.
교통수단을 이용하지 않고 동네에서부터 걸어가는 이러한 능선종주코스는 일단 사람들이 많지 않아 좋았습니다. 삼각산 주능선에 오르기 전까진 주등산로가 아니기 때문에 이런 코스를 아는 동네 사람들만 간혹 만나게 되는 이 호젓한 산행은 생각도 정리하고 건강도 다질 수 있는 곳이었습니다.
누구나 경험하듯 능선을 따라 오르다보면 그렇게도 번잡해 보이던 도시 모습도 산 능선 높은 곳에선 마치 ‘창조주의 관점에서’ 보는 작은 미니어쳐에 불과한 듯 보입니다. 자연스럽게 마음 문이 열리면서 저 작은 세상에서 그리 부대끼며 살아야 하는 지 자문해 보게 됩니다.
20대 시절부터 산을 좋아하다보니 요즘도 서울근교 산을 자주 오르는 편입니다. 주로 육산(陸山) 중심의 종주능선을 선호합니다. 요즘은 ‘트래킹(trekking)’이라고 많이들 이야기하곤 합니다. 산행을 자주 즐기는 제게 가끔 주위 사람들은 묻습니다. ‘다시 내려올 산을 왜 힘들게 오르냐?’고, 때론 ‘도대체 산엔 어떤 매력이 있는지?’를 묻곤 합니다.
그런데 산을 좋아하는 사람과 산행에 대한 이런 의문을 갖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반세기 이전 사람들에게도 똑같은 문답이었던 것 같습니다. 영국 등산가이자 문필가로 이름을 남긴 ‘프랭크 스마이드’의 저서 <산의 영혼 (The Spirit of The Hills)>에서도 이런 내용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프랭크 스마이드(1900~1949)는 영국의 저명한 등산가로서 49세로 짧은 인생을 살았지만 27권에 이르는 방대한 산악관련 저서를 남긴 문필가로도 유명합니다. 영국 히말리야 원정대로 세 번이나 참가한 적이 있습니다.
프랭크 스마이드는 20대 때부터 자전거를 이용해 하루에 다녀올 수 있는 거리내의 모든 산을 탐험해 보기로 작정한 이후 산을 좋아하게 됩니다. 요양차 지낸 오스트리아에선 알프스 일대 산들을 탐험하기도 했습니다. 그의 저서 <산의 영혼>은 프랭크 스마이드가 어린 시절부터 가까이 했던 산에 대한 탐구와 산행 기록입니다.
49년 생애동안 27권의 저서를 남긴 필력은 1946년 출간된 <산의 영혼>에서도 그대로 발휘됩니다. 문장 하나하나가 정말 주옥같습니다. 산을 오르며 혹은 고산의 산장에서 머물며 느낀 산행 체험에 대한 기록들은 독자에게 생생하게 전해져옵니다.
'산을 왜 좋아하게 되었는지', '산의 매력은 무엇인지', 혹은 '인간에게 있어 산은 어떤 존재인지'를 깊게 생각해 보게합니다. 아마도 등산을 싫어하는 사람도 이 책을 읽으면 산을 좋아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그만큼 흡인력있는 내용입니다. 생전, 법정(法頂)스님도 이 책을 <맑고 향기롭게>를 통해 추천한 적이 있습니다.
‘산들은 아름답다. 산은 그 선과 형태와 색채에 있어서 아름다우며, 그 순수함과 소박함과 자유로움에 있어서 아름답고, 산은 우리들에게 안식과 만족감과 건강을 가져다 준다. 그뿐 아니라, 육체적이고 이성적이며 정신적인 한 주체로서의 인간에게는 스스로 결정하는 숭고한 능력이 주어졌는데, 이 능력 자체는 인간을 창조주와 같은 위치로 상승시킨다. 따라서, 인간은 자신을 육체적으로, 이성적으로, 그리고 정신적으로 발전시킬 의무가 있다. 이 발전을 위해서는 산이 인간에게 이상적인 매체 노릇을 한다.’
‘산은 악한 자들이나 어리석은 자들을 위해서가 아니라, 소박한 사람들을 위해서 창조되었다. 산을 오르고 이성과 육체가 완벽하게 일치하고 조화를 이루며 일하는 것을 느끼고 아름다움을 본다는 것은 기분 좋은 일이다. 그곳에는 발견해야 할 건강이 있고 철학과 평화로운 이성과 고요한 영혼도 있다.’
‘등산은 산을 오르고 명상을 함으로써 육체적인 요소들과 정신적인 요소들의 결합을 이루게 해 주기 때문에 즐거운 활동이다. 우리들이 종사하는 일반적인 직업들로부터 야기되는 짜증스러운 골칫거리들을 벗어나 건강한 운동과 이성의 휴식이라는 분명한 혜택들을 얻는다는 것은 젖혀 두더라도, 등산은 끊임없는 분석과 처리와 경계심을 요구함으로써 두뇌를 훈련시키며, 도시 생활의 정신없는 혼란을 겪고난 다음 이성과 영혼이 목욕을 하는 듯한 평화의 삶을 가져다 준다.’
‘근심이나 슬픔의 부담을 지고 있는 사람은 산에서 마음의 평화를 찾을 수 있으리라. 태양과 달과 별들은 그들의 마음을 음악으로 가득 채워줄 터이며, 그는 바람과 개울과 눈사태와 천둥을 통해서만이 아니라, 보다 훌륭하고 보다 섬세한 진동들을 통해서 ‘산의 소리’를 듣는다. 그는 자신이 떠돌아다니는 외톨박이 티끌이 아니라 질서정연하고 완벽한 설계의 한 부분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이다.‘
겨울, 삼각산 의상봉 능선에서 바라 본 원효봉과 백운대 만경대, 노적봉(좌로부터)
프랭크 스마이드의 <산의 영혼>을 읽으면서 인상깊게 다가온 몇 단락을 발췌해 보았습니다. 어찌나 내용들이 공감이 가는지 함께 나누고 싶더군요. ‘산을 왜 오르는지’ 혹은 ‘산의 매력’을 묻는 사람들에게 좋은 대답이 되지 싶습니다. 물론, 평소 산을 자주 오르는, 산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도 일독을 권하고 싶은 명저(名著)입니다.
'세상사는...멋'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크랩] 38세 짧은 생을 살다간 양비귀... 그 꽃 또한 짧은 생을... (0) | 2010.09.28 |
---|---|
[스크랩] 해바라기 (0) | 2010.09.02 |
[스크랩] 김연아의 피눈물 나는 연습 과정 (0) | 2010.08.15 |
[스크랩] 조폭 (깍두기) 영어 한마디....ㅋㅋㅋㅋ (0) | 2010.08.14 |
[스크랩] 김연아 쇼트 78.50 세계신기록, 피겨 (0) | 2010.08.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