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톱이 다 빠지도록 신발을 만들었어도 만에 하나 이상이 있다면 두말 않고 새로 만들어 드립니다.
몇번 신었어도 상관않죠. 제가 만든 신은 최소 10년을 보증합니다.”
예술작품을 만든다는 생각으로
일을 한다는 김택규씨(64). 미아리고개에 자리잡은 수제 등산화점 ‘알퐁소’에는 그의 30년 등산화
인생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
김씨는 등산화 한 켤레 한 켤레마다 혼을 담아서는 딸아이 시집보내듯 애틋한 마음으로 고객에게 넘겨준다.
혹 트집이라도 잡히면 기꺼이 새로 짓는다. 고객의 실수로 훼손이 됐다 하더라도 10년 동안은 아무런
대가없이 고쳐준다. 이 모든 것은 김씨가 돈보다는 고객에 대한 신의를 중시하는 까닭이다.
그 결과 김씨는 ‘등산화 명장’이라는 돈으로는 감히 환산조차 할 수
없는 큰 명예를 얻었다.
사실 산깨나 탄다는 사람 치고 김씨를 모르는 사람이 없다. 전현직 대통령을 비롯해 이름만 되면
“아!” 할만한 사람들도 김씨의 고객. 뿐만 아니라 러시아인, 일본인, 미국인 등 나라 밖의 손님들도 많다.
내외국인을 불문하고 그의 등산화를 한번 신어본 사람이면 열에 아홉은 친구나 가족들을 데리고 다시
찾는다고 한다. 그러니 그의 솜씨는 새삼 거론할 여지도 없는 셈이다.
초등학교도 못나온 사람이 어떻게
해서 이토록 유명해졌을까. 그것은 죽음의 문턱까지 갔다가 되돌아온 사연많은 그의 인생살이와 깊은
관계가 있다. 고향인 전남 곡성에서 농사를 짓다 30살에 서울로 올라온
김씨는 한 때는 이름난 양화점을
세 개나 운영할 정도로 잘나갔다. 그러다 평생 갚아도 다 못갚을 것같은 큰 빚을 안은 채 폭싹 망하고 말았다.
그때가 79년. 오직 ‘죽기 위해’ 집을 나갔을 정도로 감당할 수 없는 커다란 좌절감에 빠졌었다.
그러나 인명은 재천. 쉬 목숨을 못끊고 방황하던 중 천주교에 입문하면서 새로 시작할 수 있는 용기를 얻었다.
가게 이름이자 상표명인 ‘알퐁소’는 그 때 얻은 세례명.
“60년대 말 처음 등산화를 만들기
시작할 때는 돈을 버는 것이 목적이었습니다. 그런데 죽을 고비를 한번 넘기고 나니 돈은 그렇게 중요한
존재가 아니더군요. 오직 세계에서 가장 좋은 등산화를 만드는 것만이 제 인생의 목표가 됐습니다.”
유명 외제품을 가져다가 뜯고 연구하길 십수년. 널리 인정받는 지금도 김씨는 끊임없이 연구하며 새벽부터
밤늦도록 7평 남짓한 작업실을 지킨다. 제품 하나 하나가 예술품이라는 김씨의 장인정신은 아들에게까지 이어진다.
둘째 아들 문석씨(29)가 가업을 잇기 위해 목하 수업 중. 등산화 ‘알퐁소’는 앞으로도 언제나 그 자리에서
그 제품으로 고객과의 신의를 지키게 한다는 김씨의 바람이 아들에 의해 힘을 얻게 된 것이다.
<월간 서울이라는 잡지에 실린 글입니다>
--------------------- [원본 메세지] ---------------------
얼마전 SBS에서 방송된 수제 등산화 만드는 곳 아시는분 없나요.
강북 어디였는데 할아버지가 오직 손으로만 직접 만든다고 하는데
매장은 없고 주문생산만 한다는것 같았는데...
혹시 아시는분 리플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출처 : 여유로운 산악회 - 여산회
글쓴이 : 무애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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