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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다시쓰는 제주맛집] 진미명가식당

뚜띠55 2014. 3. 3. 23:57

  살다보면 운이 좋은 날도 생기기 마련이죠.  그 운이란 것도 그저 가벼운 행운이기도 하겠지만, 억세게 좋은 운일 수도 있습니다. 뭐 다금바리 좀 맛보았다는게 억세게 좋은 운이라 부를만 한 건지는 모르겠으나, 여튼 아무런 생각없이 가볍게 점심이나 하자고 만난 친구가 다금바리를 고를 줄은 몰랐던 그런 날이었습니다.

작품활동을 하는 친구가 제주에 내려와 머물던 곳은 사계리였고, 쉬는 날 보자고 약속한 시간은 점심즈음이었습니다.  진미식당은 오래전부터 꼭 가봐야지 하는 맛집 리스트 중의 하나였고, 마침 기회가 좋다 싶어 유명하다는 지리를 맛보고자 약속장소를 이 집으로 잡았었죠.  나름의 기대감을 가지고 친구를 식당 앞에서 만나 들어가는 순간, 친구의 발걸음은 뚝 멈춰섰습니다.  마침 커다란 다금바리를 들고 손질을 하시던 주인장님의 모습에 뭔가 영감을 받은 듯한 모습.  그 친구의 선택은 단호했습니다.  "야! 다금바리 먹자!"..  깜짝 놀란 저는 일단 만류했으나 그 친구는 여전히 단호했습니다.  순간 사장님의 얼굴에도 살짝 미소의 기운이..   

  "야! 다금바리가 얼만데!..  그리고 지금 낮이야.. 너무 과한거 아니냐?" 며 다시 한 번 말렸지만, 친구를 만류하는 제 팔과 목소리엔 살짝 힘이 빠져있었습니다.  그리고 속으론 "얼씨구나!" 를 연발하고 있었죠.  싯가따위는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그 친구가 낸다기에.. 여튼, 지리탕이나 맛보려다가 갑자기 대박을 만난듯한 순간이었습니다.

  사장님께서 열심히 손질하고 계시던 12킬로급 다금바리였습니다. 카메라를 꺼내니 마침 포즈를 잡아주시네요.

  일단 주문 후 2층의 바다가 잘 보이는 자리에 앉으니 햇살이 따스합니다.  이어 나오는 작은 접시들이 사실 눈에 들어올 리가 없었죠.  원망스러웠던 건, 체중조절을 위해 이제 막 먹는 양을 조절하기 시작했다는 사실과 한낮이라 술을 못마신다는 사실이었습니다.

곧 다금바리가 나온다는데 전복따위...

  열심히 손질되고 있던 다금바리가 드디어 나왔습니다.  색상부터가 우아합니다.  밀도있는 크림색이라면 과장일까요?

  내가 언제나 이런 걸 먹어볼까 싶은 마음에 사진기만 열심히 들이대고 있었습니다.

  크기가 크다보니 부위별로 질감과 맛의 차이가 느껴지는데 다금바리라는 기대감때문이 좀 있었겠죠.  사실 부드럽고 깊다는 말 외에는 맛을 잘 설명하지 못하겠습니다.  하지만 분명히 다른 질감은 아직도 인상적입니다.  살짝 버티는 듯 하다가 어느덧 부드럽게 파고드는 느낌의 질감은 여느 회와는 분명 다른 것이었습니다. 

  생와사비도 만족스러웠죠.  와사비를 푼 간장에 살짝 찍어 먹는 맛은 자체로 환상입니다.

  허나, 이렇게 쌈을 싸서 먹는 건 전적으로 말리고 싶은 방법입니다.  회는 와사비장에 찍어 그 자체를 맛보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이었습니다.

  머리부분에서 가능한 각각의 부위를 해체해 한 접시에 조금씩 내어오는 것은 이 집의 특기랍니다.  각각 다른 아주 다양한 맛을 느낄 수 있는데, 흔히 볼살이라 하는 부위의 살짝 질긴듯한 쫀득함은 가히 예술이었습니다.  생선의 가장 맛있는 부위가 볼살이라는 건 진리에 가까운 이야기죠. 

  데친 껍질도 아주 인상적이었습니다.

  껍질과 머리에서 나온 부위들은 모두 소금장에 찍어 먹어야 제 맛을 느낄 수 있죠.

  원래 목적이었던 지리는 나중에야 만났습니다.  진하고 찐득한 지리역시 감동이었죠.  맑고 가벼움이 아닌 깊고 무거움을 제대로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회를 다 먹고도 한그릇이 아쉽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 정도였습니다.

  지리에 나오는 상차림도 만족스러웠습니다.

 

  이 집은 워낙 유명한 집이라 더 말하기가 거추장스러울 정도입니다.  단지, 지리를 맛보겠다 해서 간 때마침, 다금바리에 꽂힌 친구가 사고를 쳐 주니, 전 얼씨구나! 하며 열심히 맛을 보았죠.  경험이라는 점에서도 좋았고, 다금바리의 맛이라는 점에서도 새로움을 느낄 수 있었던 기회였습니다.  그리고 다금바리는 맛보다는 질감! 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던 기회이기도 했습니다.  낮부터 술마시기엔 그래서 맥주 몇 잔과 같이 마셔 술이 좀 아쉬웠는데, 정신이 말짱하니 다 먹고나서 문득 어른들이 생각나더군요.  가끔 제주오시는 부모님들께 한 번 맛보여드려야겠다는 다짐이 생겼습니다.  제 지갑은 얼마나 채워둬야 할 지는 알 수 없는 일이긴 합니다만..  


출처 : 칼을 벼리다.
글쓴이 : 민욱아빠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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